1919년 독일의 뮐하우젠에서 태어났고, 에어랑엔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문학, 예술사, 철학 등을 공부했다. 재학 중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가 소련군의 포로가 되어 1949년에 귀환한 한스 벤더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주요 작품으로 전쟁과 포로생활을 테마로 한 장편소설 <갈망의 음식>과 단편집 <늑대와 비둘기>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는 <외국인이여 떠날지어다>가 있다.주요 수상으로는 퀼른 문화상, 빌헬름-하우젠슈타인 상, 라인란드-팔츠 문학상, 빌레민네-뤼부케 상, 지드도이치 단편상 등이 있다.

 

■ 옮긴이 | 최석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독일어과, 동 대학원 졸업.
뮌헨대학 수학, 고려대학교 (문학박사)
독일 훔볼트 재단 연구교수 (마인츠 대학)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외국어대학 학장, 독어독문학과 교수
저서: 『Die unverkaufte Braut』, 『독일어권 여성작가』(공저), 『그림동화의 꿈과 현실』
역서: 『겐테의 한국기행』, 『힌체와 쿤체』, 『오를레앙의 처녀』, 『메시나의 신부』

 

그렇게 굶주린 군대가 적의 도시로 들어갔다. 침묵, 무시, 저주의 벽을 지나. 인간들은 그들 앞에 움츠려 들었다. 불을 끄고,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그들의 가슴은 벽을 두드리는 것 같았다. 바깥에 있는 그들조차 무분별한 총성이 문을 뚫고 방안으로 불을 내뿜는 것이 들리는 듯 했다.
어둠은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늑대들의 군대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몇 마리나 되었을까? 몇 시간이나. 시베리아의 모든 늑대들.
밤은 촌장, 포로, 아이들을 감쌌다. 그들은 오랫동안 움직이지도, 말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늑대가 돌아오는구나. 그들은 평화의 냄새를 맡고 있어.”

 

그때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파이프 관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광선 같은……. 교회에 그림이 하나 있었다. 성배 위의 신의 양. 피, 붉은 곡선 하나가 벌어진 목 상처에서 성배 가장자리로 휘어졌다. 지베르트가 바로 그랬다. 나는 교회에 있는 그 그림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는 마구를 풀고, 말에게 먹이와 물을 주었다. 그리고 군화를 닦고, 몸을 씻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고 난 후에 비로소 방안으로 들어갔다. 중위는 식탁에 앉아 비둘기를 먹고 있다. 일야의 비둘기를. 접시에는 아직도 열 마리가 넘는 비둘기가 놓여 있었다. 일야의 어머니는 비둘기집의 모든 비둘기를 죽여 털을 뽑고 구웠다. 그리고 옷 장 위에는 약속한 다른 물건들이 놓여있었다.
중위가 말했다.
“자네가 비둘기요리를 하면 훨씬 맛이 있어.”
나는 중위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먹고 싶지 않는가?”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이라니? 무슨 말이라니? 내가 토하기를 바라는군, 그렇지? 내가 혼자는 다 먹을 수 없어서 너에게 먹고 싶지 않은지 묻는 거야.”
아니, 나는 이 비둘기를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다시 비둘기를 먹게 될까?
-‘일야의 비둘기’ 중에서

 

그때 나는 그 그림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그 그림이 나의 유일한 생각이었다. 부적당하고 어리석은 생각. 몸이 경직되면서 나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교회에 있는 그림을 생각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앞으로, 내게 쏟아졌다. 꼬꾸라졌다. 이마를 무릎에 박았고, 손은 편 채 내 옆으로 쓰러졌다.
겁에 질려 꼼짝 못하고 있는데, 불쑥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렸다. 방공호 가장자리에 군인이 한 사람 서 있었다. 낯선 유니폼을 입고 낯선 철모를 쓰고 아직도 지베르트를 겨냥하고 있는 낯선 무기를 든 낯선 군인. 그를 죽인 살인자!
그러나 그는 무기를 땅에 던지고는 말했다.
“포기브 미!”
-‘포기브 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