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막이 한 꺼풀씩 떨어져나갈 때,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삶의 진정한 의미
『뮤지컬 Oh! 뮤지컬』를 통해 뮤지컬 이론의 문을 연 극작가 손정섭의 본격 희곡 모음집이 출간되었다. 모음집에 실린 희곡은 모두 실제 공연된 작품으로,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이 살아 숨쉬는 무대를 상상하며 읽는다면, 희곡을 자주 접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이삼인극과 다인극에 수록된 작품들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수작으로, 쓰는 작품마다 국내 창작기금을 독차지한다는 그의 이력만큼이나 극중 촌철살인 대사가 살아 있다. 무대 위에서 공연된다는 희곡의 성격답게 대사는 활어와 같은 생동감으로 살아나고, 장면 묘사 또한 실제적이다. 때론 투박한 사투리로, 때론 거친 열변으로, 일상적이고 다양한 삶의 모습들로 쓰인 이 작품들은 그 어떤 소설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함을 선사한다.그의 작품에는 사회 각층마다 가장 밑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요 등장인물로 낙점되었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시선은 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못할 정도로 절박하고 애틋하다. 깔끔한 연출을 좋아한다는 그. 삶의 치장이 거추장스러워 빈자의 가슴을 노래하는 것일까. 감동받기 어려운 시대에 그의 희곡들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해학과 풍자의 극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무대 위에서 재탄생되어 펼쳐지는 우리네 복잡다단한 삶과 그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 연극에 막이 있듯, 우리 인생에도 쉼표가 있다면 이 책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삶이 고단해 한 줌 마음조차 무뎌질 때, 비로소 살아나는 한 줄 희망의 노래
작가가 바라보는 삶의 이해 모습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로 표출된다. 특히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소외되거나 연약한 기반에 기대어 있는 인간 군상들에 잘 나타나 있다.
삶의 그늘에서 도망쳐왔으나 결국 그 피안에도 있지 못해 다시 도망쳐나온 두 남자(달마와 류이수), 두 화풍이 양립하지 못해 드러나는 비틀린 세력 다툼(화인), 되물림되어온 가문의 영예를 지키기에만 몰두하다 그에 반심을 품은 장손을 독살하고 만 아비(문중록)의 경우처럼 풍자의 묘미를 살린 작품들이 그 첫째이다.발칙 버전 신로미오와 줄리엣(좋게 헤어지기), 나이 많은 작가‘남자’와 그를 추종하는‘여자’의 미묘하고 복잡한 연애심리(케이프타운), 노년기에 뒤늦은 일탈을 꿈꾸다 사고를 내어 덧없이 떠나보낸 두 노인과 어딘가 닮아 있는 두 손녀(영원한 자매), 체념만 남은 여자, 복수만 남은 남자의 미용을 매개로 한 극적 화해(헤어) 등 해학을 통해 각기 다른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그 두 번째이다.작가는 삶의 이면을 모르고 화려하기만 한 사람들, 또 고난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모두 불친절하다. 이삼인극과 다인극은 이러한 세상의 불편함을 감내하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작가 손정섭과 그의 모든 열정이 녹아 있는 희곡집이다.